‘미국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다’ 영화 음악감독 박인영 동문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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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5
http://haksa.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11596/artclView.do?layout=unknown

음악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또 우리의 감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선율을 만들어 나가는 박인영 동문(작곡92)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피에타>와 칸영화제 초청작 <표적>의 음악을 작곡한 주목받는 음악감독이다. 뿐만 아니라 레드벨벳의 <빨간 맛>(오케스트라 버전 편곡), 애국가(재편곡) 등 현악기/오케스트라를 통한 가요/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고 편곡한다. 올해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신입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로 뻗어 나가며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 나가는 박인영 음악감독을 숙명통신원이 만나보았다.

 


박인영 동문 <사진 출처: 이종훈(스튜디오 레일라)>

 

1.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음악 감독이자 현()편곡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인영입니다.

 

2. 감독님께서는 주로 어떤 음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가요/팝 분야와 영화음악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요/팝 분야에서는 주로 현악기와 오케스트라 편곡을 맡고 있고, 영화음악 분야에서는 작곡, 편곡, 음악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3.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날카롭고, 정서적으로도 풍부함을 표현할 수 있는 현악기를 참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꽤 오래 배웠었는데 전공까지 하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상 중도에 포기를 해야 했어요. 그 때문에 나름대로 현악기에 대한 한이 많이 맺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직접 현악기를 연주하지는 못해도 현악기들을 위한 작곡이나 편곡을 하고 싶었어요. 이것이 아마 제가 현편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음악도 꽤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시작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다녀왔던 유학 생활에서 영화음악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영화음악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영상에 음악이 가미되어 누군가의 감성을 건드린다는 행위는 매우 의미도 있고 또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미국 LA EastWest 스튜디오에서 영화 <PMC: 더 벙커>의 음악녹음을 하는 모습

 

4. 감독님이 참여하셨던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 또는 영화가 무엇인가요?

 

작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아무래도 창궐인 것 같아요. 처음으로 영국 에비로드(비틀즈가 녹음했던 스튜디오)에 가서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며 영화음악을 녹음했는데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며 영화음악 녹음을 했다고 심포니 측 매니저분이 얘기해 주셨는데 그만큼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창궐음악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런던 녹음, LA 녹음 그리고 한국 국악 녹음을 거쳤었는데 이 모든 녹음 작업이 11일 안에 이루어졌으니, 마지막에는 너무 지쳐서 제 모습이 창궐에 나오는 좀비 같이 보였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그래도 그렇게 정성을 들여 나온 음악들을 들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5. 음악 감독으로서 뿌듯했던 순간이나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영화음악 감독으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중 하나는 올해 아카데미 신입회원이 된 것인데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놀랍기도 했고 정말 기뻤습니다. 영화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음악과 작품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가장 행복하기도 했던 시간은 뉴욕 NYU에서 영화음악 공부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40이라는 불혹의 나이에 나름 성공적으로 해 나가던 일을 내려놓고 유학을 간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뭔가 쳇바퀴 돌 듯하던 일만 계속 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좀 지치고 답답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 자신을 좀 더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는 갈증도 커져서 결국 늘 관심에 두고 있던 영화음악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영화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했던 영어나 컴퓨터음악(MIDI)등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배우는 동안 고생을 좀 많이 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답니다.(웃음)

 

6. 지난 여름 SM 엔터테인먼트, 서울시향과의 콜라보를 통해 레드벨벳 <빨간 맛>, 종현 <하루의 끝>을 오케스트라 편곡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우리나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인 SM, 최고의 교향악단인 서울시향의 장르 융합 콜라보에 편곡자로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뜻깊고 기억에 남을 일이겠죠. ‘서울시향 X 박인영이라는 타이틀로 나올 음원이었던 만큼 준비했던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에 남아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은 녹음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거리를 두고 연주한 것입니다. 처음 본 그 풍경이 매우 생경한 인상을 주었죠. 하루빨리 상황이 좋아져서 다시 풍성하게 자리가 채워진 오케스트라를 보고 싶네요.

 


 

7. 2018년에는 애국가도 새롭게 오케스트라 편곡을 하셨는데, 이를 맡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애국가를 편곡한다는 점에서 어렵거나 힘든 점이 있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요청으로 애국가 편곡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난 2005년 안익태 선생님의 유족이 애국가 저작권을 국가에 기증했지만 악보 형태여서 사용할 수 있는 음원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애국가 음원은 저작권이 한국방송공사에 있을 뿐만 아니라 비영리 공익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새 음원을 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애국가를 재편곡한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기에 흔쾌히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상했지만 애국가 편곡은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 나라의 국가에 손을 대는 작업이다 보니, 편곡을 시작하기 전부터 끝나갈 무렵까지도 편곡 방향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점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고민 끝에 최대한 안익태 선생님의 원곡과 오케스트레이션 의도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만 현대 감각에 맞추어 변화를 주었습니다.

 

8. 영화음악감독 또는 현편곡자로서 음악작업을 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을까요?

 

음악감독으로서 영화음악을 할 때와 현편곡자로서 가요나 팝 작업을 할 때 우선 접근법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작업량이나 음악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고려할 때, 대중음악 작업은 조금 짧은 호흡으로, 영화음악 작업은 조금 긴 호흡으로 가게 됩니다. 대중음악을 현편곡 할 때에는 3~5분 정도 안에 음악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영화음악을 할 때에는 음악이 필요한 각 장면에서 영상을 서포트 하거나 장면과 장면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등 전체적으로 영상과 좋은 결합력을 갖추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죠. 특히 영화음악에서의 음악은 그 장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배우들의 감정 흐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음악 자체로만 너무 튀거나 영상에서 전하려는 느낌이 너무 과장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시하고 있어요.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9. 숙명인들이 꼭 들어봤으면 하는 동문님이 작곡, 편곡하신 음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오랫동안 현()편곡자로 활동을 해오다 보니 제가 현편곡이나 오케스트라 편곡한 곡들이 먼저 생각이 나네요.(웃음) 연도에 상관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려 보자면, 앞선 질문에서도 언급한 서울시향이 연주한 레드벨벳 <빨간 맛> 오케스트라 버전과 종현 <하루의 끝> 오케스트라 버전이 있습니다. 이 두 곡은 비교적 최근에 작업한 곡이에요. 그 외에도 김동률 <답장>, 이승환 <백야>, 윤상 , 윤종신 <너에게 간다>, 조용필 <걷고 싶다>, 소녀시대(태연) <비밀>, 싸이 <챔피언>, 김범수 <보고싶다>, 박정현 <미장원에서>, 성시경과 아이유의 <첫 겨울이니까>, 김동률과 아이유의 <동화>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음악은 아무래도 영상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인만큼 영화와 함께 들어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 제가 음악감독 또는 작곡가로 참여한 영화들을 몇 개 말씀드릴게요. <창궐>, <특별시민>, <표적>, <>, <관능의 법칙>, <피에타> 등이 있습니다. 조금 많은 감이 있지만 여러분들이 들어봐 주셨으면 해서 추천해 보았습니다. 혹시 시간 나실 때 한 번씩 들어봐 주세요.(웃음)

 

10. 앞으로의 목표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 목표는 k-pop, 한국 영화음악과 더불어 해외 팝, 해외 영화음악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입니다. 요즈음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고, 한국 콘텐츠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 되는 사례들이 꽤 많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이런 현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문화 교류에 발 맞춰 저도 더 노력하면서 앞으로 좋은 콘텐츠들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현재는 영화음악 작업들, k-pop과 미국 팝 음악 작업 중에 있으며 내년에는 미국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에 뮤직 슈퍼바이저로 참여할 계획에 있습니다.

 


박인영 동문 <사진 출처: 이종훈(스튜디오 레일라)> 

 

11. 음악계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숙명여대의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 분야도 세분화가 되어 있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 안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또 앞으로 일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해 그 분야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에서 요구하는 능력이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분야를 정하고 그 분야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 나아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열정과 끈기가 있다면 어떤 분야의 음악을 하기로 결정하든 여러분이 원하는 목표에 많이 다가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리라 믿습니다. 저도 계속해서 노력하는 음악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19기 부지예(한국어문학부20), 손나은(경영학부20), 진소영(미디어학부20)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