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기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CBS 기자 정다운 동문 인터뷰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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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7
http://haksa.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10949/artclView.do?layout=unknown

매일 포털 사이트에는 수많은 기사가 올라오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계를 접한다. 이처럼 기사는 우리와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다. 그리고 여기, 기사를 통해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동문이 있다. 우리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정다운 동문은 학창시절 인권, 반노동 행위 등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인턴활동을 하면서 인권침해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보고 언론인의 꿈을 키웠다. 어느덧 7년차 기자로서 본인의 전공을 살린 법조기자로 활약하며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정 동문을 숙명통신원이 만나보았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CBS 사회부 법조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2014년 경제신문 이투데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지난해 CBS로 이직했습니다. 벌써 7년차 기자라니, 새삼 신기하네요.

 


 

2. 법학부에서 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시게 된 이유, 혹은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기자를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막연히 법조인이 되고 싶었는데 제가 입학한 2009년은 로스쿨이 처음 생기고 사법고시 인원은 줄어드는 과도기였어요. 고시 준비와 로스쿨 진학용 스펙 쌓기를 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 해에 홍성수 교수님이 우리 대학에 부임하셨는데 마침 제가 첫 지도학생이어서 교수님을 많이 귀찮게 했습니다. 교수님 수업은 물론이고 멘토프로그램도 신청해 들으면서 법학의 여러 분야(과목) 중에서인권이나 정의의 문제로 관심사가 기울었어요. 그러던 중 해외에 투자하거나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서 벌이는 반인권, 반노동, 반환경적인 행위들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을 하는 시민단체에서 인턴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방향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인권침해 행위를 하는 기업이나 타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할 때 취재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이런 현장을 담는 기자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현재 법조팀에 있지만 특별히 법조기자가 되려고 한 건 아닙니다. 보통 종합보도매체의 평기자들은 1~2년마다 인사발령에 따라 여러 부서로 이동하니까요. 물론 연차가 높아지면서 본인이 특화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면 해당 분야의 전문기자로 일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투데이 근무 시절엔 내내 증권부와 금융부를 오가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담당했고요, 이때도 법학부에서 공부한 것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금융산업은 특히 규제가 엄격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금융이나 자본시장 관련 법률을 찾거나 이해하는 측면에서 진입장벽이 낮다는 강점이 있었습니다.

 

3. 법조기자로서 중요한 직업윤리, 혹은 가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법원의 판결이나 검찰의 수사 상황을 쓴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중한 판단과 정확성을 필요로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민사이든 형사이든 재판은 각 개인에겐 인생이 걸려있을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니까요. 검찰의 수사 내용을 취재하고 쓸 때는 더 긴장해서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인권감수성, 성인지감수성은 필수이고 다른 취재 분야를 맡을 때보다 훨씬 예민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사실은 어떤 취재 영역이든 이런 식의 신중함과 긴장감, 감수성은 기자에겐 필수이기 때문에 큰 차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법률용어나 법논리가 어려운 점도 있기는 하지만 과거 증권부나 금융부에서 취재를 할 때도 전문적인 내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쓰는 기사가 사회적 약자나 우리 사회 전반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유해한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성범죄 수사나 판결 기사를 쓰면서 2차 피해를 야기한다든지, 자극적인 내용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기는 기사를 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주변 기자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4. 법조 기자의 하루 일과 또는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타사 기사를 꼼꼼히 모니터링하는 것부터 아침을 시작합니다. 새로 나온 소식이나 놓친 지점을 파악하고 오늘 취재할 내용을 정리해 보고하면, 보도국 내부 회의에서 큰 방향이 결정되고 이걸 다시 전달받아서 취재에 들어가요. 틈틈이 제보 내용을 확인하거나 문제라고 생각하는 어떤 주제에 대해 자료를 모아 공부해보기도 하고요. 하나의 기사를 내보내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통화합니다. 법조팀이다 보니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을 주로 보지만 사건과 관련 있는 다른 전문가들이나 국회 관계자,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시민 등의 이야기를 두루 듣습니다. 올 상반기에는 검언유착이 큰 화두였는데, 그런 단어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언론이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검사와 기자가 쉽게 만나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수사기관에 대한 감시도 불투명해져요. 실제로 그런 현상이 벌써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다른 취재원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적정한 거리를 지키면서도 내밀한 취재를 하고 그 결과물을 공정과 정의의 관점에서 판단하며 기사로 만들어내는 것이 기자들의 일입니다.

 

5.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 또는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요?

 

기사를 통해 문제 상황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냈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2017년 키코(KIKO) 사태 발생 10년을 되돌아보며 기획했던 기사가 기억에 남아요. 중소기업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진 사건이었는데 금융기관이나 당국은 여전히 기업의 투자 실패라고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죠. 취재해보니 부도나 파산으로 회생이 불가능해진 중소기업이 1,000곳이 넘었어요. 사회적 재난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죠. 마침 정권이 바뀌면서 금융 부문의 과오를 돌아보는 기구가 출범했고 키코 사건도 그 검토 과제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약 4개월간 20꼭지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물론 기사에 앞서 10년간 계속 싸워온 분들이 계셨고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키코 사건 재조사라는 권고가 나왔을 때 정말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는 ‘n번방’, ‘박사방가담자들을 개별 범죄가 아니라 범죄 집단으로 의율해볼 수 있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기존 법리로 안된다거나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면서 안된다는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맞는 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관련 논문과 해외 사례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UNTOC)은 물론이고 2013년 개정된 국내법에 따라 이미 범죄 집단으로 의율이 가능하더라고요. 그 내용을 보도했고 법무부에서도 곧 이들을 범죄 집단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실제로 검찰에서 기소도 했고요. 이제 법원 판단이 남아 있는데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힘들게 생각하면 사실 매일매일이 힘든 일 같습니다. 특히 성범죄 재판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건 감히 피해자의 고통과는 견줄 수 없지만 녹록치 않은 일이죠.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도 최대한 꼼꼼히 들여다보고 자극적인 서술은 배제한 후 핵심만 추려내 보도합니다. 그렇게 쓰고 나서도 이게 잘 된 보도인지 아닌지 매번 검열하고 의심하게 돼요.

 


2019년 10월 30일 열린 강제동원 피해자 기자회견에서(출처: 연합뉴스)

 

6. 기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법원 담당을 하면서 매일 성범죄 재판을 챙겨본 적이 있었어요. 방청석 제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성이 피고인 ○○○이름이 불렸을 때 일어나 판사 앞으로 나갔는데 카메라등이용촬영죄로 집행유예형을 받고 유유히 법정을 나가더라고요. 법률적으로는 이번이 첫 처벌이라 초범이라면서 양형에서 참작이 됐지만, 실제 불법촬영 사진은 수십 개였거든요. 저 사람이 오늘 퇴근길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정말 소름이 돋았어요. 그렇다고 모든 성범죄자를 영영 가둬둘 수 없다는 점도 잘 아니 이 사이에서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최근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양형기준을 일괄적으로 상향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국회가 아닌 법원에서 자체적으로 기존 양형 데이터가 없는신규 죄목에 대해 양형기준을 설정하면 일종의 입법과 같은 작용을 하므로 위험하다는 지적이 있죠. 그러나 성범죄 판결에 있어서 이미 법원이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양형기준을 설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이렇게 전문가와 일반 국민 사이의 관점을 오가면서 여러 방향을 제시하고 고민해 나가는 과정에서 묵직한 부담감과 함께 직업적인 만족감을 느끼죠.

 

7. 기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중 도움됐던 학부 때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경험을 중시하는 편이라 중고등학생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은 어떻게든 다 조금씩 발을 담가봤습니다. 한때 영화감독, 드라마 PD가 꿈이어서 무급으로 영화촬영장 스텝에 자원해 2달가량 일하기도 했고요, 음악도 관심사여서 거리공연팀에 오디션을 보고 들어가기도 했어요. 법학부에선 아시아법학생연합회(ALSA) 활동을 했고 교내 가치투자동아리(ICOS)에서 주식투자도 잠시 해봤습니다. 법학 주전공에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는데 호기심에 정치외교학과나 미디어학부 전공 수업도 들었고요. 생활비를 벌면서 학교에 다녀야 했던 상황이라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습니다. 몸이 가장 편했던 건 학교 행정실 근로장학생 근무였지만 누가 시키는 일만 정해진 규칙대로 따라 하는 것이 정말 큰 스트레스였어요. 앞서 시민단체 인턴 등 여러 경험을 거치면서 일반 기업의 직장인보다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일 것’, ‘사회 참여적인 업무일 것’,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수입’. 이런 식으로 제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좁혀 나갔습니다. 최종적으로 기자 일이 적성에 맞을지 알고 싶어서 4학년 2학기에 우리대학 산학협동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신문에서 인턴기자로 4개월간 일했습니다. 인턴임에도 절대 만만한 업무 강도가 아니었지만, 너무 값진 시간이었고 기자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바로 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해 8개월 후 합격했어요. 실속 없고 몸만 고달팠던 일도 많았지만, 저 스스로에 대해 알아갔던 경험들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서 했던 일들이라 나중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 스토리텔링도 쉬웠고요.

 

8. 기자, 또는 언론사 취업을 꿈꾸는 숙명인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마음이 맞는 동료 여성 기자들을 만나면 늘 ○○기자의 존재가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고 서로 북돋아 줘요. 유해한 [단독] 기사들이 넘치는 상황이지만 소모적인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하며 소수자·약자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기자들도 많아요. 정말로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하는 그런 기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페미니스트인 기자가 꼭 필요한 세상인 것 같아요. 숙명에서 배웠다면 이미 그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언론사 취업의 문이 정말 좁아요. 신입 공채로 큰 언론사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죠. 그러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시험을 오래 붙잡고 있기보다는 중소형 언론사에서 좀 더 자유롭게 실무 경험을 쌓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18기 서명지(홍보광고학과18), 19기 장다희(법학20), 손나은(경영학부20)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