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움직임이 큰 파도가 되어, 교내 자치 언론 <파란> 인터뷰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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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http://haksa.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10662/artclView.do?layout=unknown

2002년 자취를 감췄던 우리대학 교지 숙명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활동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우리 학생들이 직접 만든 교내 언론 자치 기구 <파란>이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으로서 살아갈 때 우리의 목소리가 맴돌지 않도록 공론장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는 <파란>은 창간호 <우리가 지워질 때>에서 쉽게 배제되는 이들의 존재를 알렸고 2<일상의 경계>를 통해 차별과 혐오가 싹트는 경계선을 조명했다. 사라져가는 교지의 정신을 되찾고자 모인 이들이 숙명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숙명통신원이 만나 들어보았다.

 


 

1.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숙명여대 자치언론 <파란>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는 신지혜(미디어학부18, 이하 신), 부편집장 임린(미디어학부18, 이하 임), 평등문화책임자 설유정(미디어학부18, 이하 설)입니다.

파란은 2002년 숙명에서 자취를 감췄던 교지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활동하고 있는 숙대 내 자치언론입니다. 20198월에 창간호를 발간했고, 올해 42호로 찾아뵌 바 있습니다.

 

2. 파란을 결성해 교지를 창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 <파란>이라는 교지를 내게 된 계기가 그리 거창하지는 않습니다. 우연히 다른 학교 교지를 읽게 된 후 우리 학교에는 교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학생자치나 인권 이슈처럼 외치지 않으면 조용히 잊힐 권리들에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고 의제를 툭툭 던져줄 매체가 우리 학교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파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지는 대학언론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매체이기도 해요. 매체들이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플랫폼을 갈아타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교지가 사라지는 건 전달 수단의 한계가 아니라 고리타분한 소식 전달 방식 때문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희는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고 동시에 섬세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굿즈나 펀딩, 카드 뉴스와 같은 온라인 홍보를 교지 발행과 병행하고 있습니다. 종이책의 수요가 뚜렷한 가운데 이런 활동들이 병행된다면 어렵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지가 이야기하는 가치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필수적이고, 무엇보다 제가 이런 새로운 판을 짜게 된 곳이 인권감수성이 높고 학생자치에 깨어있는 숙명이라는 점에서도 가능성을 봤어요.

 

3. 교지를 발간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 일단 크게 교지 제작과 펀딩 작업으로 업무가 나뉩니다. 교지 제작은 각자 2~3가지 주제를 발제한 후 기획 회의를 통해 필요한 꼭지들을 선정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요, 기획 회의만 2~3주 정도 걸립니다. 꼭지를 정하고 나서는 각자 맡은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짝꿍 피드백, 전체 퇴고, 디자인, 편집 디자인의 과정을 차례로 거칩니다.

창간호 제작 때와 달리 2호부터는 펀딩 프로젝트를 도입했습니다. 책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펀딩 작업은 책갈피나 스티커 같은 굿즈 제작, 선물 구성과 가격 책정, 펀딩 페이지 구성 디테일을 논의하는 업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달간의 펀딩 기간이 끝나면 배송작업으로 마무리합니다. 펀딩은 예산이 충분한 타 대학 교지들이 진행하지 않는 과정인데요, 저희도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소비가 주요 소비로 자리 잡으면서 2호 발간을 준비하며 처음 시도해보았어요. 큰 변화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펀딩으로 자금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4. 각 호의 메인 주제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 1호 같은 경우는 저희가 해보고 싶은 주제를 취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기준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가지 체크리스트를 마련했습니다. 시의성이 있는지, 학내 사안과 사회의 이슈를 관통할 수 있는 주제인지, 숙대생인 우리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등 입니다. 특히나 다룰만한 가치가 있고 필요한 정보를 습득해 제공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보는 편입니다.

 

: 사회 이슈 같은 경우에는 기성 매체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주제로 선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체크리스트를 마련해두기는 했지만 조건 하나하나에 구애받지 않고도 회의 과정에서 저희가 걸러낸 주제들은 자연스레 체크리스트에 부합하게 되더라고요. 또한, 저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의견을 낼 때 제가 당시에 읽고 있던 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습니다.

 

5. 교지에 실었던 글 중 특별히 아끼는 글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저희가 실었던 다양한 글 중에 2호에 실린 당신의 우울은 틀리지 않았다라는 글을 뽑고 싶습니다. 사실 우울이란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감정인데 누구도 이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깊어지는 시기를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파란>을 하면서 깨달은 건 모든 연대와 존중은 나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인데요. 이 글이 바로 나 자신을 보살피고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파란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글 속에서 정신상담 센터와 정신과가 어떻게 다른지와 같이 꼭 필요한 정보들을 학우들에게 세세하게 제공했다고 생각되는 글이라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 제가 2호에서 작성한 그 많던 여학생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글에 가장 애착이 가는데요. 원래 같은 제목의 시가 있어서 그 작품을 읽고 제가 공감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 다루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할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 고용시장에 대한 차별과 부당함의 문제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는 없더라고요. 이러한 부분을 직접 아카이빙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용시장에서 왜 여성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는지 논하고 싶었고 이러한 문제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더라도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 제가 2호에서 작성한 ‘’좁은문화의 판을 돌이킨여성들을 만나다라는 글을 뽑고 싶은데요.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저희가 종이책을 만드는 단체이다 보니 다른 문화 창작물을 만드는 다양한 여성분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제 주변에 그러한 분들이 계셨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 다른 학우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우리대학 한국어문학부 페미니즘 소모임 좁국어문과 영화 돌이키다를 연출한 문혜미 감독을 만나 뵙고 나눴던 이야기들을 담았는데요. 혼자 직접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고 속기록을 작성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주제이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전하고 또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자체가 즐거웠던 경험이었습니다.

 

6. 주제에 대한 글을 쓸 때 파란만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전하자.” 이 말은 글을 쓰는 중간중간 제가 편집위원들에게 강조한 말이기도 합니다. 말은 쉽지만 이것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원칙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가 쉽게 풀어가고자 노력한 부분들이 독자들에게도 와닿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파란>의 타깃은 사회 이슈, 학내 이슈 등에 작게나마 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외침이 그들만의 이야기로 맴돌게 하고 싶지 않아요. 독자들의 생각 자체를 바꿀 순 없어도 이러한 주제의 이야기가 있고, 이러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툭툭 던져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독자들이 글을 읽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도의 연장선으로 깔끔하고 예쁜 디자인에 글만큼이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7. 교지를 발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새롭게 경험한 점들이 궁금합니다.

 

: 사실 파란은 창간호 발행 후 1년이 갓 지난 신생단체이기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무엇 하나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단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예산 확보였습니다. 다른 대학의 교지들은 학생회비에서 예산을 받거나, 아예 학생회비를 걷을 때 교지대를 따로 걷어 예산을 충당하고 있는 데에 반해, 저희는 아시다시피 어떠한 단위로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 단체라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예산을 따러 다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호 같은 경우에는 여러 곳에 지원서를 넣고 준비한 사업을 발표하러 다니는 과정 끝에 외부 청년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받은 40~50만 원 정도의 소소한 지원금으로 제작됐습니다. 많이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마진 없이 책을 판매한 탓에 2호를 시작할 때는 다시 예산을 찾아다녀야 했었죠. 다행히 저희의 행보를 기특하게 봐주신 교수님의 소개를 받아 외부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유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3호부터는 회수 금액으로 활동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 편집이나 전체적인 발행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처음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무런 체계가 없었고, 교지를 만들겠다고 모인 친구들끼리 서로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 속에서 단체를 운영해 가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2호 때 배송 작업을 처음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배송하려고 온라인으로 봉투를 구매했는데 너무 작아서 전부 교환을 하고 할 수 없이 오프라인으로 구매를 해야 했습니다. 시간있는 사람이 저 혼자여서 시장에서 원하는 색, 사이즈, 금액에 맞는 봉투를 찾느라 고군분투한 기억이 있습니다. 배송 준비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배송 과정도 처음이다 보니 만만치 않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또 교지에 담을 인터뷰 녹취록이 있는 휴대폰이 갑자기 망가지기도 했었어요. 결국 한 팀은 서면 인터뷰를 다시 했습니다.

 

: 인원이 워낙 적다 보니 처음에는 일의 구분이 없었어요. 글 쓰고, 디자인하는 등 모든 것을 다 같이 했었어요. 2호 때에는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부원들을 리크루팅하고, 또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파란이라는 단체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3호를 제작할 때는 다양한 학과 학생들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8. 파란의 마스코트 파라니를 수달 캐릭터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 파란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스코트를 만들었어요. 사람들의 눈에 잘 들어올 수 있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다가 수달을 떠올렸죠. 수달은 모험심이 있고, 겁이 없어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는 탐험형 동물이라고 해요. 이러한 수달의 특징이 사람들에게 의제를 던지고, 어떤 주제든지 직접 부딪혀보려는 파란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해 결정했습니다.

 

9. 숙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 저희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위치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저는 우리대학이 다른 대학에 비해 토론문화가 잘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처럼 함께 사유하고 토론하며 성장해 갔으면 좋겠어요. 숙명에서 배운 민주적 가치, 연대의 힘으로 사회에 나가서 숙명 카르텔, 나아가 여성들의 카르텔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 그리고 파란에 많은 관심과 지적 부탁드립니다!(웃음)

 

: 파란의 의미가 작은 움직임, 큰 파도라는 뜻인 것처럼, 저희의 글이 개인의 보잘것없는 움직임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파도가 되어서, 그 파도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10. 교지 발간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가요?

 

: 일단, 형태상의 최종적인 목표는 리더십그룹이 되는 거예요. 너무 창대해서 터무니없어 보일 수는 있어도 저희의 목표는 처음부터 리더십그룹이었습니다. 그전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무수하고 험난하겠지만 차근차근 밟아가다 보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할 일이 많거나 도통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일들을 마주하면 장난치듯 외우는 주문이 있거든요. “불가능 없음!” 계속 믿어보려고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라고 하면 단체의 성장이 편집위원 개개인의 성장, 행복과 동행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창간호를 만들 때 저희는 고작 6명으로 시작했어요. 업무는 과중될 수밖에 없었고, 즐기자고 한 일이 스트레스와 괴로움, 부담으로 다가온 적도 있었기에 1호를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여전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호를 시작할 땐 우리 스스로가 단체를 통해 치유받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유념했던 것 같아요. 건강하게 토론하고, 대단하지 않은 일상들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래서 이 따뜻한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는 그런 단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18기 유혜지(영어영문학부18), 19기 정시현(미디어학부20), 진소영(미디어학부20)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