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함이 강점이 될 수 있죠” 디자이너 최나나 동문 인터뷰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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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http://haksa.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04033/artclView.do?layout=unknown

“Connecting The Dots.” 대학 시절 스티브 잡스가 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보고 누군가는 시간 낭비이며 쓸모 없는 경험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경험들이 점처럼 모여 하나의 선이 되고 마침내 자신의 인생이 되었다고 말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성격은 단점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현직 디자이너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나나 동문(시각·영상디자인과11졸)은 산만함 덕분에 얻은 다양한 경험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막 새로운 시장을 개척 중인 캐나다 지사에서 어린 나이에 팀의 리더로 일하고 있다. 이메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 동문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숙명인들을 위해 선뜻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영상디자인과 11학번 최나나라고 합니다. 로레알코리아 인턴, 컨티늄코리아 인턴, 아모레퍼시픽 한국본사 디자이너를 거쳐 현재 아모레퍼시픽 캐나다 지사에서 디자이너로 발령받아 근무 중에 있습니다.

 

2. 학부 시절 동문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매우 산만한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공예과로 입학하였으나 전공이 저와 맞지 않아 1학년 말에 시각·영상디자인과로 전과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과에서 적응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고, 2학년 동안 F를 무려 5번이나 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3학년부터는 학점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3.14로 졸업했습니다. 원주율 학점이라고도 하죠. (웃음) 저는 학창 시절에 학점 대신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 같아요.

 

3.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그림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대학에 오니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그 뒤로 겉모습만 예쁜 디자인이 아닌 생각이 담긴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경제, 경영, 심리 관련 교양수업을 수강해서 듣기도 하고, 관련 서적을 읽고 대외활동들을 열심히 참여하면서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당시에 대외활동을 다양한 회사와 기관에서 했는데, 한 정당의 대학생 위원회 홍보국장으로 일하기도 했고, 여러 회사에서 주관하는 마케터 대외활동 및 벽화봉사도 했어요. 덕분에 회사에서 마케터, 개발자들과 협력할 때 그들의 관점에서 말하고 설득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최나나 동문은 재학 시절 다양한 국내외 공모전에 지원해 수상했던 경험을 소중한 자산으로 꼽았다.

사진은 신세계 유통프론티어 디자인리그에서 수상 후 찍은 기념사진> 


4.숙명에서의 대학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전공 수업 중에 현 오리콤 대표이신 박서원 교수님의 광고 디자인 1,2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년 동안 다양한 해외 공모전에 작품을 내는 수업인데, 박서원 교수님께서는 여러 해외 광고제를 휩쓴 경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생생한 노하우를 알려주셨어요. 항상 해외 공모전에서 상을 수상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어 그와 관련된 경험담과 정보들을 알고 싶었는데, 학교 수업에서 이렇게 좋은 교수님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당시 제가 들었던 수업에서 해외 수상을 20개 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5. 마케팅이나 광고와 관련된 화려한 수상 경력이 많으셔서 놀랐습니다.

 

대학생 때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교류하고 싶어 유명한 대학교 연합 마케팅 동아리에 원서를 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면접 당일 공예과를 나와서 뭘 할 수 있냐는 등의 말들을 들으면서 큰 상처를 받았고 그 때 오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미술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그 뒤로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닥치는 대로 나갔던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는 오기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기획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당시 공부했던 지식들을 통해, 상품과 브랜드를 단순히 시각적 만족이라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서 디자인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6. 대학 생활 중 창업 관련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구글 코리아에서 대학생 마케터로 활동할 때 만났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창업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지역기반 소셜커머스앱으로 시작해서 점차 기혼자들을 위한 커플메신저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죠. 여러 창업 경진 대회에서 굵직한 펀딩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성이 없어서 접게 됐어요. 하지만 그 때 배웠던 경영학적 관점들이 지금 실무를 하는데 있어 시장을 바라보는 큰 스펙트럼을 가지게 해 주었어요. 사실 사업적 성과는 전혀 없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홍대 클럽 DJ로 활동하던 모습>

 

7.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기까지, 동문님께서 삶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혹은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한 곳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성격 때문에 대입공부를 세 번이나 실패했고, 원하지 않던 삼수를 하게 되어 자포자기 심정으로 극단적인 시도를 하려 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어차피 죽을 각오라면 이 각오로 해보고 싶었던 건 다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잃을 것이 두려워 섣불리 도전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도전했어요. 전문 코스프레팀, 홍대 클럽 DJ부터 앨범 발매, 연애 칼럼니스트활동 등 주변사람들이 시간 낭비, 쓸모 없는 경험이라고 일컫는 활동들만 골라서 했죠. 역설적이게도 구글 코리아에서 대학생 마케터를 뽑을 때 면접관들이 가장 좋게 보셨던 것들이 바로 제 다양한 경험들이었어요. 그 경험들을 통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어떤 걸 하며 살면 좋을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죠. 제 삶의 원동력은 앞으로도 산만함을 유지하며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는 거예요.

 

8. 현직 디자이너로서 관련 분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요?

 

디자이너로서 실무에 필요한 능력이라면 경영에 대한 기초 이해와 마케팅에 대한 지식 그리고 통계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예술가가 아닌 이상은 어떤 회사에서 상품 또는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배분한 예산을 이용해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소비할 만한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무리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디자인이라도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막대한 비용낭비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래서 실무에서는 디자인을 하기 전 다양한 방식의 사전조사를 통해 논리적으로 디자인을 풀어나가려고 노력해요. 저는 학교에서 경영 및 경제, 통계학, 앙트러프러너십 수업 등 다양한 교양수업을 통해 기본을 배웠고, 후에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며 이런 실무 지식을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구글코리아 대학생 마케터 활동>

 

9. 캐나다에서 리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신데,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회사가 캐나다 시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초기 지사 창립 멤버 중 한명으로서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전부 짜는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이를 위해 업체 찾기, 계약하기, 프로세스 만들기 등 전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디자이너 외적인 업무를 많이 진행하게 됐어요. 지금이야 팀원들이 있어 많은 힘이 되지만, 초기에는 저 혼자 이 모든 것들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었죠. 물론 뿌듯한 점도 많아요. 본사에 있을 땐 제가 만든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파악하기 힘들었는데, 지사에서는 더욱 생생하게 소비자 반응을 파악할 수 있어요. 또한 K-뷰티를 알리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10. 동문님의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고 있다 보니 커리어를 키워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아이가 조금 더 자란다면 석사과정을 밟고 싶습니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밸런스를 잘 맞춰 나가고 싶어요.

 

11. 동문님에게 숙명여대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숙명여대는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숙대생들은 조용한 편이다보니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어 잘 몰랐지만 여러 업계에 숙명의 영향력은 정말 강하다는 것을 실무를 하면서 느낍니다. 또 회사 선배들 사이에서도 숙대 출신들은 성실하고 일을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해요. 저 또한 이러한 평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후배와 선배간의 구심점이 되어서 모교를 빛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12.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고 있을 숙명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또는 해보고 싶은 일이 자신이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과 다르다고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이 저에게는 정말 깊게 와 닿았어요. 정말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생각했던 분야들이 파고들다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곤 하거든요. 또한 이러한 유기적인 연결고리들을 많이 만들수록 자신만의 독보적인 콘텐츠가 쌓여가게 된다고 생각해요. 산만함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17기 이혜진(한국어문학부17), 임서연(미디어학부17)

정리: 커뮤니케이션팀